1 요시야의 죽음
1)앗수르가 약해져 가는 시점에 요충지인 갈그미스를 점령하고자 애굽과 신흥 바벨론이 부딪히게 된다. 애굽 왕 느고의 군대가 남 유다를 통과 해서 북진하려는데 요시야가 막아선다. 느고는 당신을 치려고 온 것이 아니니 상관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권고한다. 느고는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고 말한다. 비록 믿지 않는 이방 사람의 말이지만 역사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는 돌아가지 않는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것이다. 결국 요시야는 전투에서 전사를 하게 된다.
2)요시야의 죽음은 그 당시의 정치. 군사적인 흐름을 잘못 판단한 결과이다. 즉 하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전쟁을 벌이다가 죽게 된 것이다. 요시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방인인 느고를 통해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역대기는 이 문제에 대해 요시야가 느고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시각으로 해석한다. 요시야의 죽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면 누구든지 큰 실패를 당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판단력이 흐려지지 않도록 기도하라.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2 애석한 죽음, 죽음에 대한 해석
1)요시야는 남유다 16대 왕으로 8세에 즉위하여 31년간 통치했고 39살에 죽었으니 너무나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다. 그의 생애가 흠이 없는 선한 왕이었기에 ‘슬퍼하다’는 표현이 여러 번 반복된다. 예레미야는 ‘애가’를 지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남겨진 자의 슬픔과 아쉬움은 떠나간 이가 살아온 고귀한 삶에 대한 평가이며 기억이다.
2)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의 죽음은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니다. 성경은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귀하다고 했다.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14:13). 너무 오래 살아서 마지막 모습이 추해지기 전에 적당한 때에 데려가 달라고 기도한다는 어느 목사님이 생각난다. 소풍같은 이 땅의 삶이 끝나는 날, 훌쩍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다. 성도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