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25:32,33)
다윗은 마온이라는 지역에 머물 때 일행의 양식을 위해 그 지역의 부자인 나발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다윗의 요청은 지나친 부탁이 아니었습니다. 수차례에 걸쳐 백성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켜 주었으며 광야에서 피신 생활을 하는 동안 나발의 목자와 가축들을 보호하는 담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나발이 은혜를 아는 자였다면 다윗의 요청을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부했고 오히려 ‘주인을 반역하는 못된 종’이라는 모욕적인 말로 다윗을 무시했습니다. 나발의 이름의 뜻은 ‘바보’’야비한 자’를 의미하는데 그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그가 얼마나 거만하면서 또 미련한 사람인지 짐작이 됩니다. 다윗은 너무나 분노했습니다. 나발을 당장 치기 위해 무장한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보복을 하러 나섭니다. 이것은 사울을 대할 때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다윗이 모습입니다. 나발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격분하고 흥분된 감정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그가 만일 그때 나발에게 갔다면 끔찍한 살육이 일어났을 것이며 순간적인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을 것입니다. 한편 나발은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못보고 겉으로만 판단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이스라엘 가운데 숨겨두신 의인들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비가일은 지혜를 발휘하여 사태를 수습합니다. 음식을 준비하여 다윗을 만나러 갔고 진실한 호소로 다윗을 설득시켜 그 마음을 진정시키게 됩니다. 그런데 그녀는 어떤 말로 다윗을 설득시켰을까요? 그것은 다윗의 미래를 언급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미래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신정왕국을 건설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피를 흘림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이 복수욕에만 사로잡혀 눈에 끼여 있는 어리석음의 비닐을 때어내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나발의 경우와 같이 배신의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럴때마다 분노로 사람을 응징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참을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조건 참아 그 순간을 잘 이겨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존귀하게 될 내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모습입니다. 다윗과 같이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성도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잊는 순간 믿음없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행동하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가지신 미래를 생각함으로써 오늘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할지라도 그 관점으로 순간 순간 바른 판단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를, 그리고 아비가일의 호소를 듣고 하나님이 그녀를 통해 말씀하심을 깨닫고 순종한 다윗의 겸손함을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