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요3:16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먼저 접하고 또 사랑하는 구절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작은 복음서’라고 말했을 정도로 한 구절안에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진리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너무나 익숙해서 그 사랑의 길이와 깊이와 넓이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처럼’으로 번역된 ‘후토스’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세상에 대해 나타내시는 사랑의 분량과 정도를 보여줍니다. 원문에서는 이 단어가 문장의 서두에 나옵니다. ‘이처럼’안에 우리가 다 알수 없는 사랑의 깊이가 담겨있습니다. 누군가의 사랑을 확인받고 싶을 때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대답합니다. 사랑하고 있음을 그것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안에는 구약과 신약의 모든 역사를 포함하는 긴 세월이 함축되어 담겨 있습니다. 그 마음이 다 전달되지 않아도,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이 이와 같이 세상에 있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 사랑이 십자가에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마음을 몰라줍니다. 나는 그 사랑이 필요없다며 거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파하시고 고통당하시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배반하고 달아나는 자녀를 억지로 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눅13:34).
신앙생활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의 삶속에서 하나님과 생생한 사랑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정말 어떤 분이신지요?’ ‘주님의 사랑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더 알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욱 사랑의 관계안에서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이처럼’ 안에 담긴 그 사랑에 마음을 열어가는 자들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