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 (19:6,7)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많이 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교회 이름도 유난히 사랑이 많이 들어갑니다. ‘사랑의 교회. 주사랑교회, 온사랑교회. 참사랑교회. 예수사랑교회…..’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함께 강조돼야 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교회 이름을 정하고 간판을 그렇게 달지 않더라도 이 땅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정의의 교회, 공의의 교회이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남북 연합군이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다 아합이 죽게 됩니다. 미가야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간신히 죽음을 면한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선지자 예후로부터 악한 아합과 동맹을 맺은 일에 대해 책망을 받습니다. 여호사밧은 예후의 책망을 듣고 다시 신앙을 회복하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모세 율법에 근거를 둔 사법 개혁을 단행합니다. 성읍마다 재판관을 세우고 바르게 재판하도록 지도합니다. 재판할 때 뇌물을 받거나 불의함으로 치우지지 않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정하고 바르게 재판하도록 당부합니다.
이 세상에는 불의가 있고 차별이 있고 부당한 일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습니다. 진실한 신앙은 개인적인 경건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차별과 불의와 부당함을 보았을 때 맞설 수 있어야 하며 그곳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의와 공의를 세워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은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