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9:22)
이스라엘에서 서로 인사할 때 또는 상대방의 안부를 물을 때 사용하는 말이 ‘샬롬’입니다. 이는 우리말에 ‘평안하셨습니까?’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예전에 정세가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시절에는 ‘밤새 별일 없으셨어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말 그대로 간밤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불안한 시절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발전된 인사는 ‘아침 식사하셨습니까?’ 입니다. 가난하여 굷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에는 제때에 한 끼를 챙겨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그렇게 인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처럼 인사에는 그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불안하고 힘든 시대, 그리고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는 평안을 뜻하는 ‘샬롬’의 인사를 서로 주고받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요람 왕이 군대 장관인 예후를 맞이하여 그가 자신에게 오는 것이 평안인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예후야 평안하냐? ‘ 요람은 예후에게 군대는 이상은 없는지, 전쟁 상황은 어떠한지 단순히 물어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후는 ‘당신의 어머니 이세벨이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함으로 오히려 요람 왕을 무안하게 합니다. 이세벨이 우상 숭배와 음행과 온갖 사술로 나라를 타락의 길로 끌고 가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는가라는 반문입니다. 반란의 계획을 이미 세우고 온 예후는 자기를 마중 나온 요람 왕을 살해합니다. 이로써 오므리 왕조가 무너지고 예후 왕조가 시작됩니다. 예후는 반역과 쿠데타를 통해 왕위를 빼앗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바알 숭배와 선지자를 죽인 오므리 왕조와 아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한 것입니다. 요람의 아버지 아합은 부당한 왕권을 이용하여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 죄 없는 그를 죽였습니다. 바로 그 포도원 위에서 요람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공의로운 심판과 징계를 내리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가짜 평안이 많습니다. 주변의 다른 사람이 힘들어서 울고 있는데 나는 편안하다고 여기는 것은 진정한 평안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대로 잘 풀리는 것을 평안한 것으로 여기며 사는 것은 가짜 평안에 취한 증거입니다. 가짜 평안을 추구하지 말고 참된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참된 평화는 전쟁에 승리나 패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바른 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