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17:3-4)
우상 숭배하는 아합 왕에 대항하기 위해 디셉 사람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그의 첫 번째 사역은 아합 왕을 찾아가 담대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절대 권력자인 왕 앞에서도 움츠리지 않고 담대하게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확신한다며 누구를 상대하든 당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담대한 선포 이후에 주신 말씀이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그릿 시내에 조용히 숨어 지내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그릿 시내에 가서 숨으라는 어려운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시내가 마르게 됩니다. 순종했는데 삶에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엘리야에 대한 훈련의 의미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반복해서 임할 때마다 순종합니다. 사람은 깨달은 대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익숙한 대로 사는 존재입니다. 수없이 반복하지만 또다시 옛 모습의 익숙함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다듬고, 또 다듬고 깨닫게 하셔서 늘 자신을 깊이 성찰하게 하십니다. 무엇보다 이 훈련의 의미는 앞으로의 많은 일들을 잘 감당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들입니다. 이런 시간들이 없었다면 갈멜 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영적 전쟁을 담대하게 수행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까마귀의 기적 같은 공급 속에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삶과 같아보여도 그 시간들은 더 큰 하나님의 때를 위해 힘과 겸손과 내공을 안으로 비축하고 응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다른 방법으로 다루십니다. 어떤 사람은 더 많은 고난을 겪는 것같이 보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고난이 있다고 덜 사랑한다는 시각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스데반과 바울이 당한 고난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시각으로 큰 고난을 받았지만 영원히 빛나는 믿음의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의 인생을 향해 갖고 계시는 계획은 우리의 야망이나 비전보다 훨씬 더 숭고하고 깊고 아름답습니다. 엘리야처럼 우리 인생에도 그릿 시내가 마를 때가 찾아옵니다. 힘든 시간들이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십니다. 나를 돌아보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게 하셔서 이전보다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살아가는 자가 복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