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18:3,4)
아합의 시대는 바알 우상 숭배가 가장 심한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 속에 살았던 한 사람의 인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가 오바댜입니다. 오바댜는 궁내 대신이라는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으로 비록 아합의 신하였지만 바알에 굴복하지 않은 순수한 신앙을 가진 인물입니다. 그는 공적 직무와 개인적인 신앙 사이에서 수많은 날들을 갈등했을 것이며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세벨의 광기와도 같은 혹독한 핍박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은 변하지 않습니다. 위기의 시대가 오면 인간성의 최악과 최선의 모습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위기의 시대속에 참 신앙의 진면목을 아합의 궁내 대신 오바댜의 모습에서 보게 됩니다. 참 신앙은 시대의 물결 속에 죽은 물고기처럼 순응하며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거친 물살을 거스르며 오르는 것입니다. 오바댜는 당시 선지 학교의 생도들로 추정되는 선지자 100명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을 굴에 숨기고 3년이 넘게 지속적으로 양식을 공급했습니다. 피난민의 은신처로 알려진 갈멜산 주변에는 2000여 개의 석회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비록 고위 관직에 있지만 극한 가뭄의 시기에 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3년 넘게 지속적으로 양식을 공급했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더구나 탄로시에는 극형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그 일을 계속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지위를 선용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의 모습에서 참된 신앙은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실천을 통해서 나타나야 함을 알게 합니다.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쉰들러를 통해 살아난 1100명의 사람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반지를 건네줍니다. 거기에는 탈무드의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통해 한 생명이 구원받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영혼의 리시트를 가진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내가 서있는 곳, 나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흘러가 모든 죽어가는 영혼들이 살아나는 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