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 (9:10)
삼하 9장은 다윗의 정복 전쟁과 공의로운 통치로 나라가 강대국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 속에 끼여있는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내용입니다. 모든 상황이 안정된 어느 날, 다윗은 예전에 요나단과 나눈 언약이 생각났습니다. 마침 사울 가문을 섬겨오던 종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시바였습니다. 시바를 통해서 수소문하여 요나단의 아들 하나를 겨우 찾아내었는데 그는 다리를 저는 자였습니다. 요나단의 하나 남은 아들은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인데 두 다리를 모두 절었습니다. 몰락한 왕가의 후예로 겨우 목숨만 연명하며 신분을 숨기고 숨어 살고 있던 므비보셋이 다윗 앞에 불려 왔을 때 분명히 두려움에 떨며 왔을 것입니다. 자신을 죽은 개와 같다고 표현합니다. 두 다리의 장애를 가진 자신의 무가치함과 상태를 ‘죽은 개’로 표현하여 자신을 극도로 낮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안심시킨 후에 그를 부른 이유를 차분히 말합니다. 그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부른 것입니다. 그의 조부인 사울의 밭을 다 도로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으라고 말합니다. 므비보셋이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내용이고 믿을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자격이 안 되는 므비보셋을 지목하여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가장 존귀한 자격과 대접을 받는 왕의 식탁에 참여하게 한 것입니다. 그는 항상 왕의 식탁에 참여하여 나라 일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뿐 만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 친근하게 대우받으며 여생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므비보셋에게 베푼 다윗의 호의는 단지 므비보셋이 인간적으로 불쌍해서 베푼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총은 요나단과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요나단을 인하여’ 베푼 은총이었습니다. 사울을 통해 도피 생활을 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요나단이 자신에게 베풀었던 호의와 또 그와 맺었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20년이 지난 오래된 약속을, 더구나 당사자는 이미 죽고 없는 지금 그 약속을 기억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런 선한 대우를 받은 므비보셋의 감격을 생각하며 바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 앞에 설 수조차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상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저 보기만해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길로 갔던 자들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을 인하여’ 베푼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같은 은혜를 날마다 누리며 삽니다. 놀라운 은혜를 입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를 감격할 수 있어야 하며 날마다 그 은총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두 다리를 절며 죄의 실존 속에 살아가지만 오늘도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풍성한 왕의 식탁에 나아가는 자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