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요압이 그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암몬 자손의 땅을 격파하고 들어가 랍바를 에워싸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니 요압이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매” (20:1)
요즘 한국은 학폭(학교폭력) 파문이 크게 번지고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운동 선수가 과거에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한 운동선수는 SNS에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글을 올렸는데 자신이 올린 내용 때문에 오히려 역으로 그가 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방송에 출연하는 연예인이 과거에 학교 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도 합니다. 과거와는 달리 그동안 억울해도 숨기고 있던 일들을 용기 내서 밝히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를 보면서 자신이 과거에 했던 부끄러운 일들이 알려질까 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철없던 시절의 행동이라고 하지만 그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덮어두고 지나가면 언젠가는 스스로의 앞길을 막는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대상20 장은 이스라엘과 암몬과의 전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같은 내용을 다룬 삼하11장에서는 다윗의 범죄가 나옵니다. 전투 기간에 궁전에 남아 낮잠을 즐기다가 자신의 신하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이도록 교사한 내용을 자세히 다룹니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그 긴 내용을 모두 생략하고 단지 ‘다윗은 예루살렘이 그대로 있더니’라고만 묘사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우리아의 영혼이 미투운동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은폐된 사실을 밝혀서 나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그렇다면 역대기는 왜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역대기의 기록 의도가 다윗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과감하고 생략하고 이스라엘이 승승장구하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역대기의 관심이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이 이상으로 삼아야 할 다윗 왕조의 영광과 번영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실수나 범죄한 내용인 밧세바 사건에 대해서 침묵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의도적으로 재해석하더라도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죄가 허용될 수 없었고 그리고 그 쓰라린 대가는 반드시 지불되어야 했습니다. 역대기는 인간의 죄와 허물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