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24:14-15)
오스트리아의 여류시인 잉케보르크 바하만은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라는 시를 썼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날개가 있으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시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몰락을 보면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없다’고 평하는 것이 맞는듯 합니다.
결국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바벨론이 4차에 걸쳐 침공하였습니다. 24:1절이 1차 침공입니다. 1차 유다 침공(B.C 605년)으로 성전의 보물들이 약탈당했고 유다의 왕족과 귀족 집안사람들이 포로로 잡혔갔습니다. 이것이 1차 바벨론 포로(유수)의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들 중에 다니엘이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왔지만 왕족으로 대우받아 바벨론 왕실의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그러나 그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내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단1장의 내용과 연결 지어 보십시오)
3년 후에 친애굽 성향의 여호야김이 애굽과의 전쟁으로 약해진 절호의 기회를 틈타 바벨론을 배반하자 연합군을 편성하여 유다를 재침공합니다. 이것이 2차 침공입니다(2-4절). 2차 포로기에 여호야김이 쇠사슬에 결박되어 포로로 끌려갔다가 다시 회복됩니다.
3차 침공은 B.C 597년에 있었습니다(10절내용). 바벨론은 성전과 왕국의 보물을 약탈하고 여호야긴을 비롯한 많은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 이때 끌려간 사람들은 방백과 용사들과 모든 공장과 대장장이 등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에스겔이 잡혀 갔습니다. 포로로 끌려 온 갈대아 땅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에스겔의 모습과 연결지어 생각해 보십시오(겔1:1-3). 이처럼 유력한 자들은 다 잡아갔고 남유다에서 사회적 신분이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만 남겨두었습니다 (대항할 힘이 없는 세력으로 간주되는)
자연에도 약육강식의 논리가 있듯이 강한 나라에 약한 나라가 굴욕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힘의 논리는 세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도 적용됩니다. 성도에게 영적인 능력이 없으면 사단의 종으로 전락하여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영적인 능력을 상실한 이 시대의 교회를 ‘바벨론에 사로잡힌 교회’라고 말합니다. 유다처럼 세상에 유린당하는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 너무나 처참합니다.
추락하는 유다에게 날개가 없습니다. 강대국과의 외교술로 타개해 나가려 했지만 더욱 큰 화를 초래할 뿐이었습니다. 유다의 몰락의 원인은 외세가 강해서도 아니고 내부적으로 붕괴되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유다의 개혁과 부흥을 꿈꾼 요시야가 있었지만 이미 결정된 유다의 멸망을 돌이키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므낫세의 악행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 멸망을 하나님의 심판 예언의 성취라는 신학적 입장에서 해석(2,3절)합니다. 유다의 모습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모두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합니다. 믿음을 상실한 자는 그가 가진 모든 것 또한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다 잃는다 해도 우리의 소중한 믿음만은 잃지 말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